대림동 여경 관련




1.
해당 여경은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체력적으로 밀리는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여경에게 남자경찰과 똑같이 범죄자를 제압할 것을 주문하는 건 가혹하다. 게다가 현실적이지도 않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체력 차이는 인정해야 할 부분이지, 무시할 일이 아니다. 해당 여경이 경찰 자질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찰의 업무도 여러가지고, 그중에는 여경에게 적합한 일도 있다. 다만 현장출동과 범죄자 제압 등의 일에 맞지 않을 뿐이다.



2.
경찰의 일에는 범죄자 제압만 있는게 아니다. 민원상담이나 각종 행정절차, 소송/고소 등의 민원안내 등도 있고, 사건들에 따른 각종 행정/서류처리들도 있다. 범죄자도 강력범죄자만 있는거 아니고, 사기사건이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여성 관련 범죄도 있고, 여성 범죄자들도 있다. 예를들어 성매매 여성 단속은 법적으로 여경을 동행하고 해야한다. 여성범죄자 몸수색 등의 일을 남자 경찰에게 맡기기는 어렵다.



3.
그렇다면 문제는 자명하다. 여경이 잘할 수 있는 일과 남자경찰이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이를 잘 구분하지 않고, 주취자 난동부리는 현장 같은데에 무리하게 여경을 투입해버리는 경찰시스템의 문제다. 이게 이렇게 된 원인에는, 작년 한창 혜화역에서 있었던 "여경 비율 90% 채워라" 같은 식의 비합리적인 시위와, 또 그걸 수용하려 했던 정부 및 경찰당국의 책임이 크다. 무리하게 여경 비율을 확대하려는 정책을 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여경들이 현장직으로 내몰리게 되고, 그 피해는 국민 치안 불안으로 돌아온다.



4.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문제고 시스템의 문제다. 이를 해당 여경 개인의 일탈이나 개인적인 문제인 양 호도하고 해당 여경분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는 건 옳지 않을 뿐더러 실익도 없다. 우리는 그 개인의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치안시스템 구축을 위해 논의하여야 한다. 이를 자꾸 해당 여경 개인의 문제로 잘잘못을 따지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논점을 호도하는 것이며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가려버리는 행위다. 언론과 경찰 당국이 자행하는 이런 논점 호도 때문에, 정작 논의되어야 할 경찰시스템에 대한 얘기는 진행되지 않고 해당 여경분만 억울하게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되고 악플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5.
남녀 특성상 각자 선호하는 일이 다르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는 건 생각보다 꽤나 증명된 일이다. 여성직종은 육체적인 노동강도를 덜 요구하며, 기계나 공업과 덜 관련되고, 반면에 인도적인 관심사(HUMAN)을 보다 중시하며 영업(BUSIN)이나 숙박(ACCOM)관련 서비스직종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작업대상과 관련해서도 여성직종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작업(FP)에서, 남성직종은 사물을 상대로 하는 작업(FT)에서 각각 고도한 숙련을 요구하고 있다.(직종특성과 성별 직종분리 : 미국 노동시장의 사례를 중심으로, 황수경, 2001) 그렇다면 직무배분도 그에 맞게 이루어지는 게 맞다. 작년 혜화역 시위에서 여경 비율을 높이라고 했던 주된 이유도, 여성 피해자들을 상담하고 케어하는 일은 남성 경찰이 할 수 없고 여경이 필요하다는 게 주요 논지였지 않은가.



by uuu | 2019/05/21 11:42 | 트랙백 | 덧글(13)

성매매에 대한 페미니즘의 입장을 아라보자

성매매에 대한 페미니즘의 입장을 아라보자




리버럴 페미니즘

성매매=여성의 권리=헌법으로 보호해야 함

-> 하나의 직업일 뿐이므로 범죄화하지 말아야 한다 -> 여성의 성매매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여성에 대한 억압!




래디컬 페미니즘

성매매=가부장제의 억압=여성의 노예화

-> 무조건 막아야 한다 -> 성매매의 존재 자체가 여성에 대한 남성사회의 가부장적 억압에서 비롯!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성매매=여성의 주체적인 활동=여성의 표현의 자유이자 여성해방의 상징=존경할 만한 일

-> 성매매를 안좋게 보는 건 여성에 대한 남성사회의 억압!







결론.

성매매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혹은 무관심하든

당신은 남성중심사회와 가부장제의 부역자이자 여성억압의 주체가 됩니다.


출처 : 유럽 10개국 성매매 관련법제 비교연구. 한국법제연구원. 이은애, 김재광. 2006



ps.
정작 성매매를 제일 탄압하고 없애려 하는 건 가부장주의자들임




by uuu | 2019/05/07 09:10 | 트랙백 | 덧글(2)

남성 권력과 성매매


그래서 공창제를 지지한다.




남성 권력이 성매매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면, 왜 성매매는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까? 오히려 장려해야 하지 않을까?



수천년간 폭력과 권력 비대칭이 이어져 내려와서 성매매가 정당성을 얻었다면, 성매매에 대한 시선은 지금의 것과는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인류역사상 성매매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적이 거의 없다. 언제나 불법이었고, 음지의 일이었으며,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천시되는 일이다. 특히 일부일처제를 위시로 한 보수적인 사회일 수록, 성에 대한 금기와 성매매에 대한 멸시는 같은 선상으로 이루어진다. 조선시대에도 기생들이 머무르던 기방은 양반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창녀는 예나 지금이나 여성이 가지는 직업 중 가장 천한 것으로 여겼으며, 사회적인 멸시의 대상이 된다.



창녀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경우는 매우 특수한 경우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모든 여성은 일생에 한번 신전에서 성매매를 해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헤로도토스의 기록 외에는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일이라, 진위 여부를 알기가 어렵다. 설령 진실이라 하더라도, 헤로도토스가 묘사한 히에로가미는 종교적인 제례의식이지, 성욕을 매개로 한 성매매와는 다르다.



많이들 오해하는데, 우리나라는 한번도 성매매가 합법이었던 적이 없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졌던 공창들은 1947년 미군정이 공포한 공창제도폐지령에 의해 불법화되었고,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나서는 1961년 윤락행위등방지법에 의해 불법이자 처벌대상임이 명확해졌다. 이후 단속을 제대로 하고자 성매매 특별법을 통해 처벌수위를 강화한 것이지, 그 전에도 엄연히 성매수자, 성판매자 모두 처벌 대상이었다. 1968년도에 서울 종로에서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 시장이, 한 윤락녀의 오빠 놀다가 라는 말을 듣고 빡쳐서 일대 윤락가를 다 초토화시켰던 일은 꽤나 유명한 일이다. 이 사건은 당시 세간의 인식으로는, "전쟁 후에 무너진 사회에서 허무주의가 팽배하며 성매매가 늘어나던 걸,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다" 라는 표현을 썼었다. 예나 지금이나 성매매의 증가는 사회 기강이 해이해지고 국민들의 삶이 무너짐에 따라 나타나는 지표로 인식한다.



이는 조선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애초에 유교를 바탕으로 한 조선이란 나라는, 성매매에 호의적일 수가 없었다. 유교에서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이루고자 하며, 그만큼 가정이란 단위를 중시하기 때문에 성매매 같이 가정을 위협하는 존재는 금해야 마땅했다. 태조 때 대사헌 박경이 올린 여악을 금해달라는 상소를 보면 이런 게 잘 드러난다. 태종 대엔 경외의 창기를 모두 없애라는 태종의 명이 있었다. 세종 때도 창기를 없애고자 했었다. 조선시대도, 고려시대도 불법이었다. 외국은 어떤가? 중국은 1946년도에 모든 유곽을 폐쇄하고 성매매를 사형으로 다스려서 없애버렸다. 레위기 19장에는 신이 모세에게 너희 딸을 창녀로 내놓아 몸을 더럽게 하지 말라 라고 명령한다. 그들이 얘기하는 "남성 권력"이란 게 실존한다면, 그 남성 권력과 성매매의 관계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호의적인 관계가 아닐 것이다.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적 관념에 따르자면, 성매매란 존재는 뿌리뽑고 없애버려야 할 죄악일 뿐이다.



by uuu | 2019/05/05 23:26 | 트랙백(1) | 덧글(1)

사이비



어떤 학문이든 초기엔 이상하고 병신같고 하지만 점차 성장하며 나아지는거란 말은 물론 맞다.


그러나 어떤 운동이든, 학문이든, 가만히 우쭈쭈해주고 관심만 가져줘서 잘 자라는 아기같은 학문도 없다.


정상학문이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온갖 날선 비판과 지적을 받고, 관련이 있든 없든 "그딴게 왜필요하냐?"라는 태도를 지닌 수없는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온갖 잣대를 가져다들고 가타부타 따지고 깨부숴가며, 그들을 하나하나 설득하고 납득시키면서 비로소 현실 속에서 존재가치를 입증해가며 성장하는 거다. 기존의 과학들은 이런 과정들을 거쳐왔다. 세상에 결코 거저 주어지는 건 없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싫다면, 그건 학문으로 붙여줄 자격도 없는 사이비에 불과하다. 그런 사이비는 퇴출되어야 한다.


by uuu | 2018/11/28 19:16 | 트랙백 | 덧글(0)

가부장제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가 여성 억압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세상에 수많은 페미니즘이 있다 해도, 이 지점은 대동소이하다. 그들은 단 한번도 "이성애자 남성"의 정체성이 권력에서 배제되거나 억압당할 수 있다는 가정은 하지 않는다.


가부장제는 원래 남성 가장이 나머지 가족 성원들을 모두 통제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대신 모든 책임도 떠안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가족 형태를 묘사하는 용어다. 그러나 페미니즘에서는 이것과 별개로, 굉장히 넓은 의미로 사용하는 듯하다. 가부장제는 말하는 사람마다 제멋대로 각양각색으로 사용하고, 심지어 그냥 여성억압과 동의어로 쓰기도 한다. 이쯤 되면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정의는 역사학에서의 정의와는 꽤나 떨어져버린다. 


페미니즘에서의 가부장제 개념은, 마르크스주의의 계급이론에서 출발한다. 페미니스트들은 마르크스의 계급이론에서 따와서 독자적인 여성 억압 이론을 만들었다. 이들은 성별 권력관계를 여성 억압의 본질로 규정하고, 남성과 여성을 생물학적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파악했다. 그러나 이들의 이론은 결국 생물학적인 환원론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남성과 여성이 본질적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파악하게 되면, 결국 실천적으로는 남녀 분리주의와 남성에 대한 계급투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이런 계급론적 관점에서, 가부장제의 물질적 토대를 밝히려던 시도도 있었다. 하이디 하트만은 여성의 노동력에 대한 남성의 통제를 여성억압의 근원으로 보았다. 남성 노동자들이 자본가와 공모해서 가족임금제도를 확립하여, 남자는 돈벌고 여자는 집안일하는 구조를 확립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였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현대 페미니즘 이론에서도 여전히 자주 등장한다.


문제는 가부장제가 정말 남성들의 음모이자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자본가와의 공모냐는 것이다. 자본주의 초기에 일부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의 특정 직업에 진입하는 것을 반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탄광에서 여성의 지하작업을 금지했던 것이나, 공장노동에서 여성의 노동을 제한했던 것은 여성에게 해로운 것이었는가? 현장 작업장에 유해가스나 유해물질들을 다뤄야 하는 작업들에 여성도 포함시키는 것이 여성에게 이로운 것인가? 70년대 청계천 방직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은 굉장히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인간으로써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하냐"며 따지며 "하루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라"며 몸에 불을 질렀던 전태일 열사는 가부장제와 여성억압의 주범이었는가? 제조업과 중공업 위주로 성장해온 산업사회의 구조에서 열악한 노동환경과 경제에 맞서 자신을 희생해온 건 누구인가? 산업사회 당시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성별 구분없이 노동자를 일터에 밀어넣었던 공산주의 사회는 과연 성공했는가?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적절한 보호와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분노한다. 위험에 닥쳤는데 남자가 지켜주지 않을 때, 시댁과의 갈등에서 남자가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릴 때, 임신 출산 등 여자 인생의 전환점에 곁에 있어주지 않을 때, 남편이 남편으로서 해야 할 가정 수호의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남편이 내 편이 아닌 남의 편이라고 느낄 때 여성들은 분노하고 좌절한다. 페미니즘 이론 대로 가부장제가 문제고 가부장제가 없어져야 한다면, 남자에게 저런 보호는 애초에 기대해선 안되었다. 말그대로 동등한 존재고 같은 입장이라면, 남성이 저런 의무를 더 짊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 남성으로서의 의무와 책임, 사회화를 벗어던지자고 주장하는 게 바로 맨박스 담론이다. 이렇게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대로, 남성성을 벗어던지고 본성을 회복하겠다고 하는 애들이 저기 일베 같은데에서 여자도 군대나 가라는둥, 결혼비용 반반이 당연하고 맞벌이가 필수라는둥 외치고 더치페이 주장하면서 김치녀 운운하는 애들이다.


우리나라의 100여년 역사 중엔, 사실 가부장제가 정착된 적이 드물다. 남자가 가정을 지켜야 하는데 가정생활은 내팽개치고 술이나 퍼먹고, 생활비 갖다줄 생각은 안하고 엉뚱한 짓만 하고 돌아다닌다. 여자를 책임져야 할 남자가 되려 여자가 먹여살려주길 바란다. 시댁이나 처가와 갈등이 생길 때 가장으로서 나서서 조율하고 하긴 커녕 문제만 더 키우는 경우가 많다. 여자가 힘든 일 있을 때 지지해주고 보호해줘야 할 남자가 되려 자기만 생각하면서 상처만 준다. 여자를 아끼고 지원해줘야 할 남자가 자기만 알고 상대를 부려먹으려고만 든다. 이런 것들은 바로 가정에서의 사회화가 덜된 남자들, 가부장적이지 못한 남자들이다. 


가부장적인 남자라면 응당 자기 여자를 지키고 보호하고 지지해줘야 한다. 생계부양은 물론이고, 집안일도 최대한 합리적으로 여자가 힘들지 않게 해줘야 한다. 시댁이나 처가 등과 갈등이 있을 때도, 한 가정의 대변자로서 나서서 원만하게 해결해야 한다. 자기 자신은 아프고 힘들더라도, 자기 마누라와 자식들 먹여살리고, 고통받지 않게 하는 게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임신이나 출산으로 아내가 힘든 상황, 산후 우울증이나 갱년기 같은 힘든 시기들에서, 남자가 각종 뒷바라지도 책임지고 해줘야 한다. 가정 내의 여러 문제들에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게 남자다.


by uuu | 2018/11/14 15:33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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