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따르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정직한 노동이다. 노동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데 창출된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가져가기 때문에 사회주의 경제학에 따르면 노동시장은 본질적으로 착취구조다. 



사회주의 경제학에서 가치 라는 개념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가치는 내재적인 무언가이며, 노력으로 흘린 피와 땀이고, 숭고하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어떤 것이다. 내 앞에 있는 수박주스는 한잔에 4천원을 받는데, 이 수박주스가 한잔에 4천원을 받는 이유를 사회주의 경제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농부들이 내내 땀흘려가며 수박을 키우고 그 수박을 유통업자들이 열심히 날라다주며 그렇게 온 수박을 주스 만드는 분들이 적당한 비율에 맞춰 수박주스를 만들어준 그 모든 노력들이 가치가 있으므로 그 가격이 정당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가치는 그저 가격일 뿐이다. 수박주스가 4천원인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그저 수박주스가 맛있기 때문이다. 맛있으니까 사람들이 사는거고 수요공급의 선이 4천원에 맞았으니 4천원인 거다. 수박주스가 더 맛있고 인기있다면 5천원 넘어 6천원도 될 수 있는거고, 맛이 없으면 더 떨어지기도 하는거다. 만약 수박주스가 맛이 없다면, 농부들이 수고하고 유통업자들이 수고하고 주스 만드는 사람들이 고생했다고 해서 맛없는 수박주스가 높은 가격을 받아야 할까? 못생기고 매력이 없는 남자가 들이댄다고 생각해보자. 맘엔 안들지만 어쨌든 열심히 노력하고 수고를 다하니까 그 남자를 받아줘야 할까?



이쯤 되면 자본주의가 "가치"를 너무 폄하하는게 아니냐 라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다. 자본주의에서 가치는 그저 가격으로 표기되는 것이기에, 오히려 다양한 가치가 인정될 수 있다. 사회주의에서는 "노동"만이 유일한 가치창출의 수단이기에, 노동으로 창출되지 않은 다른 부가가치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본가들을 착취자로 바라보는 이유도, 회사 경영과 방향 결정이라는 회사를 이끄는 중요한 업무들과 책임들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체계에서는 엄마들은 일하지 않기 때문에 월급도 받으면 안되고, 목사님도 일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받으면 안된다. 어찌 이런 신성한 가치를 고작 돈 따위로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학에서는 어찌됐든 가격이 되면 그것이 가치다. 그리고 가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가치를 인정한다. 엄마에게 월급으로 3백을 주면 그것이 곧 엄마의 가치가 되는거고, 목사가 헌금으로 1억을 받으면 그것이 곧 가치가 되는거다. 이유가 뭐가 됐든 가격을 부여하면 그것이 가치가 되는거다. 그 가치에 이유를 얘기하는 건 그 다음 얘기다.



자본주의 경제학에서는 가치 란 단어에 그렇게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가치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해당 대상이 얼마나 대우받느냐를 나타내는 것 뿐이며, 그것은 가격으로 구체화된다. 자본주의 경제학에서는 가치 란 단어에 심오한 의미부여를 하기보단, 가치가 어떻게 변화하느냐 혹은 가치창출이 어디서 이루어지고 어떤 흐름을 가지느냐 등을 더 중요시한다.


by uuu | 2019/07/08 10:25 | 트랙백 | 덧글(1)

외국 여경, etc



1.
외국 사례 어쩌고 하는건 항상 비슷하다. 결론은 국가마다 다르다. 외국이라고 꼭 성별 구분없이 뽑는 것도 아니고, 그런 나라도 있고 아닌 나라도 있다. 서로 자기 주장에 맞는 나라만 가져다가 "외국은 다 이렇다"라고 하면 곤란하다. 미국의 경우 워싱턴주 경찰은 달리기와 팔굽혀펴기 시험에서 남녀에 등급 차등을 둔다. 그러나 뉴욕주나 LA경찰은 남자와 여자 모두 동일한 기준으로 선발한다. 


영국의 경우 남녀 체력기준이 동일하다. 그러나 영국은 대부분의 남성이 통과할 수 있는 낮은 체력기준을 갖고있다. 반면 여성의 경우 40~45% 정도가 체력검정에서 탈락한다고 한다.(박선영, 각국 여경제도 및 운영에 대한 비교 연구, 2011) 남녀의 신체적 차이가 있어 남녀 모두를 만족시키는 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경우에도 성별 분리 모집을 하고있고, 채용기준에 남녀의 체력조건이 다르다. 게다가 일본은 스토커, 아동학대, 성범죄, 청소년선도, 홍보등 여성의 특성을 활용하기위한 한정된 부서에 여경을 주로 배치한다. 


프랑스는 어떨까. 프랑스는 남녀 분할모집은 하지 않고, 응시자격은 동일하지만 체력검정 조건은 다르다. 1982년도에 여경 할당제가 생긴 적이 있긴 하지만, 이후 1991년도에 폐지되었다. 프랑스의 체력검정 기준은 무거운 물건 들기 남자 40kg/ 여자 25kg, 팔굽혀펴기 남자 5회 / 여자 3회, 뜀틀뛰기 남자 71cm / 여자 61cm 이다. 



2.
위에 얘기한 영국의 예를 들어보자. 영국은 체력기준을 하향평준화해서 남녀를 동일한 기준으로 선발한다. 그럼 과연 영국의 치안은 어떨까? 2014년도에 수갑까지 채웠던 강도가 여경을 때려눕히고 중상을 입혔던 영국 햄프셔 여경 습격 사건이 있었다. 2018년도에 있었던, 남성 용의자 한명에게 여경 2명이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던 링컨 여경 폭행사건에서의 영국 대중의 반응은 어땠을까? 


제아무리 선진국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으면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다. 여경을 늘리든 줄이든 근거가 될 수 있는 건 국내 현실에 대한 면밀한 조사지, OECD 국가들 여경비율 같은게 아니다. 이 와중에 남녀를 분리채용하고 체력조건도 다르고 하는 업무도 다르게 배정하는 일본이 치안 좋기로 정평이 나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3.
이런 얘기 하면 꼭 남녀를 우월 혹은 열등 으로 보면서 성차별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평등은 만능도 아닐 뿐더러, 절대적인 가치도 아니다. 성평등도 그것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득이 되는 경우에 추구하는거지, 모두가 힘들어지는 평등은 추구할 필요가 없다. 평등 뿐 아니라 어떤 가치라도 마찬가지다. 왜 우리가 "노동자들의 평등을 위해 사적 소유를 제한하고 모두가 같은 임금을 받는" 공산주의를 배척하는가? 실제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의 피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차가 꼭 능력의 우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예를들어 남성의 이공계 선호와 여성의 문과계 선호는 능력보다는 선호도의 차이다.(굳이 따지자면 여성의 언어능력이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좋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여성의 언어능력은 남성보다 높게 나타난다.) 그럼 언어와 수학을 모두 잘하는 한 여성 개인의 입장에서, 수학을 잘하더라도 좀더 잘하는 언어를 전공으로 고를 수 있다. 혹은 더 좋아하는 걸 고를 수도 있다.


미국 미주리대와 영국 리즈베켓 대학에서 67개국의 이공계 졸업생 비율을 조사한 결과를 보자. 노르웨이나 핀란드 등 성평등 지수(1에 가까울수록 평등함을 의미)가 가장 높은(0.76 이상) 나라들은 이공계 졸업생 중 여성 비율이 20%로 가장 낮았다. 스페인 폴란드 미국 호주 등 성평등 지수가 중간(0.66~0.75)인 국가는 여성 비율(25% 내외)도 중간이었다. 반면 아랍에미리트나 알제리 등 성평등 지수가 최하위(0.6~0.65)인 국가의 경우 이공계 졸업생 중 여성 비율은 40%로 세계 최고였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루마니아 터키 등 유럽 동남부 국가들도 비슷했다. 이런 걸 성평등의 역설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단 몇개의 논문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많은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반복증명되는 현상이다. 위 조사에서 성평등 지수가 높게 나오는 나라들은 보통 선진국이고, 이런 나라들은 전체적인 소득수준도 높아서 직업 안정성이 높아 굳이 이공계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보다 돈이 되는 일자리를 찾길 원한다. 사회문화적 맥락에 의한 차이를 줄이고 개인의 선호를 중요시할 수록, 성별 차이는 더 극대화된다는 거다.

그럼 이런 선호도를 무시하고 무조건 여성을 이공계에 밀어넣는 것, 혹은 남성을 간호업계에 밀어넣는 것은 정당한가? 과거 중국 공산당이 남녀차별을 금한다는 명목 하에 모든 직업에서 남녀 비율을 맞춘 게 어떤 결과를 나타내었는가?



4.
한때 인간의 본성도 양육과 사회화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된다는 설이 대세였던 시절이 있었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남녀의 선호도나 개인 성향 등 여러 가지 것들이 오로지 부모의 양육태도나 사회문화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는 설이다. 인간은 빈 서판과 같아서 그 위에 어떤 걸 쓰느냐에 따라 어떤 인간이 될지 결정된다는 설이다. 이런 학설은 특히 사회학을 중심으로 전세계에 열풍을 일으켰고, 1세대 페미니즘의 주요 이론적 근거가 되어왔다. 남녀의 본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두 사회제도와 문화에서 성역할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학설은 존 머니 박사의 30년간의 사기극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없어질 거 같았지만, 아직도 이런 식의 설명은 대중의 마음속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유전이나 진화 같은 생물학적인 요소를 얘기하면 사람들은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실제로 존 머니 박사를 위시한 환경결정론자들은 여전히 정신승리중이다.) 생식기관이나 각종 신체적인 부분에 대한 진화적 성차이는 인정하면서, 왜 유독 뇌에 대해서만은 진화적 차이를 애써 부정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기관 중 가장 에너지를 많이 쓰고 가장 복잡한 기관은 뇌인데, 왜 뇌는 진화적 성차를 나타내선 안되는가?



5.
이것은 인간이란 존재를 마음대로 바꾸고 싶어하는 심리 중 하나 아닐까. 인간 역시 하나의 동물이고, 자연이라는 진화의 실험장 속에 던져진 존재들이다. 선천적으로 성기가 모호하게 태어난 사람들이 왜 어릴때부터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낄까? 데이비드 라이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남자로 태어난 사람을 아무리 어릴때부터 여성으로 기르려 해도 결국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인간을 사회적, 문화적 규제에 의해 마음대로 바꾸고 조종하려는 거야말로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아닌가? 차라리 개를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6.
나는 어떤 한쪽 성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는 말을 하고싶은 생각이 없다. 그보다는 개개인의 성향과 특성을 존중하자는 말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들에 대해 "은연중에 성차별에 숨어있다" 혹은 "사회의 억압이 있다"는 등의 말을 함부로 하지 말자. 이런 말은 상대를 주체적이지 않고 세뇌된 인간으로 취급하는 폭력일 뿐이다.


by uuu | 2019/05/23 18:04 | 트랙백 | 덧글(5)

대림동 여경 관련




1.
해당 여경은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체력적으로 밀리는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여경에게 남자경찰과 똑같이 범죄자를 제압할 것을 주문하는 건 가혹하다. 게다가 현실적이지도 않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체력 차이는 인정해야 할 부분이지, 무시할 일이 아니다. 해당 여경이 경찰 자질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찰의 업무도 여러가지고, 그중에는 여경에게 적합한 일도 있다. 다만 현장출동과 범죄자 제압 등의 일에 맞지 않을 뿐이다.



2.
경찰의 일에는 범죄자 제압만 있는게 아니다. 민원상담이나 각종 행정절차, 소송/고소 등의 민원안내 등도 있고, 사건들에 따른 각종 행정/서류처리들도 있다. 범죄자도 강력범죄자만 있는거 아니고, 사기사건이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여성 관련 범죄도 있고, 여성 범죄자들도 있다. 예를들어 성매매 여성 단속은 법적으로 여경을 동행하고 해야한다. 여성범죄자 몸수색 등의 일을 남자 경찰에게 맡기기는 어렵다.



3.
그렇다면 문제는 자명하다. 여경이 잘할 수 있는 일과 남자경찰이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이를 잘 구분하지 않고, 주취자 난동부리는 현장 같은데에 무리하게 여경을 투입해버리는 경찰시스템의 문제다. 이게 이렇게 된 원인에는, 작년 한창 혜화역에서 있었던 "여경 비율 90% 채워라" 같은 식의 비합리적인 시위와, 또 그걸 수용하려 했던 정부 및 경찰당국의 책임이 크다. 무리하게 여경 비율을 확대하려는 정책을 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여경들이 현장직으로 내몰리게 되고, 그 피해는 국민 치안 불안으로 돌아온다.



4.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문제고 시스템의 문제다. 이를 해당 여경 개인의 일탈이나 개인적인 문제인 양 호도하고 해당 여경분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는 건 옳지 않을 뿐더러 실익도 없다. 우리는 그 개인의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치안시스템 구축을 위해 논의하여야 한다. 이를 자꾸 해당 여경 개인의 문제로 잘잘못을 따지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논점을 호도하는 것이며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가려버리는 행위다. 언론과 경찰 당국이 자행하는 이런 논점 호도 때문에, 정작 논의되어야 할 경찰시스템에 대한 얘기는 진행되지 않고 해당 여경분만 억울하게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되고 악플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5.
남녀 특성상 각자 선호하는 일이 다르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는 건 생각보다 꽤나 증명된 일이다. 여성직종은 육체적인 노동강도를 덜 요구하며, 기계나 공업과 덜 관련되고, 반면에 인도적인 관심사(HUMAN)을 보다 중시하며 영업(BUSIN)이나 숙박(ACCOM)관련 서비스직종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작업대상과 관련해서도 여성직종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작업(FP)에서, 남성직종은 사물을 상대로 하는 작업(FT)에서 각각 고도한 숙련을 요구하고 있다.(직종특성과 성별 직종분리 : 미국 노동시장의 사례를 중심으로, 황수경, 2001) 그렇다면 직무배분도 그에 맞게 이루어지는 게 맞다. 작년 혜화역 시위에서 여경 비율을 높이라고 했던 주된 이유도, 여성 피해자들을 상담하고 케어하는 일은 남성 경찰이 할 수 없고 여경이 필요하다는 게 주요 논지였지 않은가.



by uuu | 2019/05/21 11:42 | 트랙백 | 덧글(14)

성매매에 대한 페미니즘의 입장을 아라보자

성매매에 대한 페미니즘의 입장을 아라보자




리버럴 페미니즘

성매매=여성의 권리=헌법으로 보호해야 함

-> 하나의 직업일 뿐이므로 범죄화하지 말아야 한다 -> 여성의 성매매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여성에 대한 억압!




래디컬 페미니즘

성매매=가부장제의 억압=여성의 노예화

-> 무조건 막아야 한다 -> 성매매의 존재 자체가 여성에 대한 남성사회의 가부장적 억압에서 비롯!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성매매=여성의 주체적인 활동=여성의 표현의 자유이자 여성해방의 상징=존경할 만한 일

-> 성매매를 안좋게 보는 건 여성에 대한 남성사회의 억압!







결론.

성매매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혹은 무관심하든

당신은 남성중심사회와 가부장제의 부역자이자 여성억압의 주체가 됩니다.


출처 : 유럽 10개국 성매매 관련법제 비교연구. 한국법제연구원. 이은애, 김재광. 2006



ps.
정작 성매매를 제일 탄압하고 없애려 하는 건 가부장주의자들임




by uuu | 2019/05/07 09:10 | 트랙백 | 덧글(2)

남성 권력과 성매매


그래서 공창제를 지지한다.




남성 권력이 성매매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면, 왜 성매매는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까? 오히려 장려해야 하지 않을까?



수천년간 폭력과 권력 비대칭이 이어져 내려와서 성매매가 정당성을 얻었다면, 성매매에 대한 시선은 지금의 것과는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인류역사상 성매매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적이 거의 없다. 언제나 불법이었고, 음지의 일이었으며,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천시되는 일이다. 특히 일부일처제를 위시로 한 보수적인 사회일 수록, 성에 대한 금기와 성매매에 대한 멸시는 같은 선상으로 이루어진다. 조선시대에도 기생들이 머무르던 기방은 양반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창녀는 예나 지금이나 여성이 가지는 직업 중 가장 천한 것으로 여겼으며, 사회적인 멸시의 대상이 된다.



창녀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경우는 매우 특수한 경우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모든 여성은 일생에 한번 신전에서 성매매를 해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헤로도토스의 기록 외에는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일이라, 진위 여부를 알기가 어렵다. 설령 진실이라 하더라도, 헤로도토스가 묘사한 히에로가미는 종교적인 제례의식이지, 성욕을 매개로 한 성매매와는 다르다.



많이들 오해하는데, 우리나라는 한번도 성매매가 합법이었던 적이 없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졌던 공창들은 1947년 미군정이 공포한 공창제도폐지령에 의해 불법화되었고,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나서는 1961년 윤락행위등방지법에 의해 불법이자 처벌대상임이 명확해졌다. 이후 단속을 제대로 하고자 성매매 특별법을 통해 처벌수위를 강화한 것이지, 그 전에도 엄연히 성매수자, 성판매자 모두 처벌 대상이었다. 1968년도에 서울 종로에서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 시장이, 한 윤락녀의 오빠 놀다가 라는 말을 듣고 빡쳐서 일대 윤락가를 다 초토화시켰던 일은 꽤나 유명한 일이다. 이 사건은 당시 세간의 인식으로는, "전쟁 후에 무너진 사회에서 허무주의가 팽배하며 성매매가 늘어나던 걸,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다" 라는 표현을 썼었다. 예나 지금이나 성매매의 증가는 사회 기강이 해이해지고 국민들의 삶이 무너짐에 따라 나타나는 지표로 인식한다.



이는 조선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애초에 유교를 바탕으로 한 조선이란 나라는, 성매매에 호의적일 수가 없었다. 유교에서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이루고자 하며, 그만큼 가정이란 단위를 중시하기 때문에 성매매 같이 가정을 위협하는 존재는 금해야 마땅했다. 태조 때 대사헌 박경이 올린 여악을 금해달라는 상소를 보면 이런 게 잘 드러난다. 태종 대엔 경외의 창기를 모두 없애라는 태종의 명이 있었다. 세종 때도 창기를 없애고자 했었다. 조선시대도, 고려시대도 불법이었다. 외국은 어떤가? 중국은 1946년도에 모든 유곽을 폐쇄하고 성매매를 사형으로 다스려서 없애버렸다. 레위기 19장에는 신이 모세에게 너희 딸을 창녀로 내놓아 몸을 더럽게 하지 말라 라고 명령한다. 그들이 얘기하는 "남성 권력"이란 게 실존한다면, 그 남성 권력과 성매매의 관계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호의적인 관계가 아닐 것이다.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적 관념에 따르자면, 성매매란 존재는 뿌리뽑고 없애버려야 할 죄악일 뿐이다.



by uuu | 2019/05/05 23:26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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