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어떤 학문이든 초기엔 이상하고 병신같고 하지만 점차 성장하며 나아지는거란 말은 물론 맞다.


그러나 어떤 운동이든, 학문이든, 가만히 우쭈쭈해주고 관심만 가져줘서 잘 자라는 아기같은 학문도 없다.


정상학문이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온갖 날선 비판과 지적을 받고, 관련이 있든 없든 "그딴게 왜필요하냐?"라는 태도를 지닌 수없는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온갖 잣대를 가져다들고 가타부타 따지고 깨부숴가며, 그들을 하나하나 설득하고 납득시키면서 비로소 현실 속에서 존재가치를 입증해가며 성장하는 거다. 기존의 과학들은 이런 과정들을 거쳐왔다. 세상에 결코 거저 주어지는 건 없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싫다면, 그건 학문으로 붙여줄 자격도 없는 사이비에 불과하다. 그런 사이비는 퇴출되어야 한다.


by uuu | 2018/11/28 19:16 | 트랙백 | 덧글(0)

가부장제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가 여성 억압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세상에 수많은 페미니즘이 있다 해도, 이 지점은 대동소이하다. 그들은 단 한번도 "이성애자 남성"의 정체성이 권력에서 배제되거나 억압당할 수 있다는 가정은 하지 않는다.


가부장제는 원래 남성 가장이 나머지 가족 성원들을 모두 통제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대신 모든 책임도 떠안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가족 형태를 묘사하는 용어다. 그러나 페미니즘에서는 이것과 별개로, 굉장히 넓은 의미로 사용하는 듯하다. 가부장제는 말하는 사람마다 제멋대로 각양각색으로 사용하고, 심지어 그냥 여성억압과 동의어로 쓰기도 한다. 이쯤 되면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정의는 역사학에서의 정의와는 꽤나 떨어져버린다. 


페미니즘에서의 가부장제 개념은, 마르크스주의의 계급이론에서 출발한다. 페미니스트들은 마르크스의 계급이론에서 따와서 독자적인 여성 억압 이론을 만들었다. 이들은 성별 권력관계를 여성 억압의 본질로 규정하고, 남성과 여성을 생물학적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파악했다. 그러나 이들의 이론은 결국 생물학적인 환원론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남성과 여성이 본질적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파악하게 되면, 결국 실천적으로는 남녀 분리주의와 남성에 대한 계급투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이런 계급론적 관점에서, 가부장제의 물질적 토대를 밝히려던 시도도 있었다. 하이디 하트만은 여성의 노동력에 대한 남성의 통제를 여성억압의 근원으로 보았다. 남성 노동자들이 자본가와 공모해서 가족임금제도를 확립하여, 남자는 돈벌고 여자는 집안일하는 구조를 확립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였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현대 페미니즘 이론에서도 여전히 자주 등장한다.


문제는 가부장제가 정말 남성들의 음모이자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자본가와의 공모냐는 것이다. 자본주의 초기에 일부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의 특정 직업에 진입하는 것을 반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탄광에서 여성의 지하작업을 금지했던 것이나, 공장노동에서 여성의 노동을 제한했던 것은 여성에게 해로운 것이었는가? 현장 작업장에 유해가스나 유해물질들을 다뤄야 하는 작업들에 여성도 포함시키는 것이 여성에게 이로운 것인가? 70년대 청계천 방직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은 굉장히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인간으로써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하냐"며 따지며 "하루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라"며 몸에 불을 질렀던 전태일 열사는 가부장제와 여성억압의 주범이었는가? 제조업과 중공업 위주로 성장해온 산업사회의 구조에서 열악한 노동환경과 경제에 맞서 자신을 희생해온 건 누구인가? 산업사회 당시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성별 구분없이 노동자를 일터에 밀어넣었던 공산주의 사회는 과연 성공했는가?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적절한 보호와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분노한다. 위험에 닥쳤는데 남자가 지켜주지 않을 때, 시댁과의 갈등에서 남자가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릴 때, 임신 출산 등 여자 인생의 전환점에 곁에 있어주지 않을 때, 남편이 남편으로서 해야 할 가정 수호의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남편이 내 편이 아닌 남의 편이라고 느낄 때 여성들은 분노하고 좌절한다. 페미니즘 이론 대로 가부장제가 문제고 가부장제가 없어져야 한다면, 남자에게 저런 보호는 애초에 기대해선 안되었다. 말그대로 동등한 존재고 같은 입장이라면, 남성이 저런 의무를 더 짊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 남성으로서의 의무와 책임, 사회화를 벗어던지자고 주장하는 게 바로 맨박스 담론이다. 이렇게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대로, 남성성을 벗어던지고 본성을 회복하겠다고 하는 애들이 저기 일베 같은데에서 여자도 군대나 가라는둥, 결혼비용 반반이 당연하고 맞벌이가 필수라는둥 외치고 더치페이 주장하면서 김치녀 운운하는 애들이다.


우리나라의 100여년 역사 중엔, 사실 가부장제가 정착된 적이 드물다. 남자가 가정을 지켜야 하는데 가정생활은 내팽개치고 술이나 퍼먹고, 생활비 갖다줄 생각은 안하고 엉뚱한 짓만 하고 돌아다닌다. 여자를 책임져야 할 남자가 되려 여자가 먹여살려주길 바란다. 시댁이나 처가와 갈등이 생길 때 가장으로서 나서서 조율하고 하긴 커녕 문제만 더 키우는 경우가 많다. 여자가 힘든 일 있을 때 지지해주고 보호해줘야 할 남자가 되려 자기만 생각하면서 상처만 준다. 여자를 아끼고 지원해줘야 할 남자가 자기만 알고 상대를 부려먹으려고만 든다. 이런 것들은 바로 가정에서의 사회화가 덜된 남자들, 가부장적이지 못한 남자들이다. 


가부장적인 남자라면 응당 자기 여자를 지키고 보호하고 지지해줘야 한다. 생계부양은 물론이고, 집안일도 최대한 합리적으로 여자가 힘들지 않게 해줘야 한다. 시댁이나 처가 등과 갈등이 있을 때도, 한 가정의 대변자로서 나서서 원만하게 해결해야 한다. 자기 자신은 아프고 힘들더라도, 자기 마누라와 자식들 먹여살리고, 고통받지 않게 하는 게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임신이나 출산으로 아내가 힘든 상황, 산후 우울증이나 갱년기 같은 힘든 시기들에서, 남자가 각종 뒷바라지도 책임지고 해줘야 한다. 가정 내의 여러 문제들에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게 남자다.


by uuu | 2018/11/14 15:33 | 트랙백 | 덧글(2)

탈코르셋



탈코르셋을, 여성 개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많이들 생각한다.

그러나 아니다.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의 "꾸밈"을 남성에게 잘보이려는 행위로 파악하고, 이를 거부하려는 운동이다. 여기엔 꾸밈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같은 개념은 들어있지 않다. 이렇게 알고 있었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사실 탈코르셋이란 말이 유행하기 이전에도, 페미니즘에서는 이런 개념들이 존재해왔다. 이들은 여성들이 사적 공간에서 치장하는 일들이, 화장이나 외모로 여성들간의 계층이 나뉘어지고, 이렇게 나뉘어지는 이유가 여성이 남성에게 외모로 평가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계급적으로 우위인 남성 성별의 선택으로 인해, 열위인 여성 성별이 외모로 계층화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탈코르셋 운동이란, 여성해방을 위해서 이런 남성과의 계급적 구조를 타파해야 하고, 그 방법으로 "꾸밈노동"을 여성들이 모두 동시에 중지하는 걸 얘기하는 것이다.


이 운동은 1960-70년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을 비롯한 문화 페미니즘에서 크게 유행했다. 그리고 이들의 탈코르셋은 레즈비어니즘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남성을 모두 거부하고, 여성들끼리 사는 레즈비언이 가장 바람직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레즈비언이란 성적 지향이 고착화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얘기하는 레즈비어니즘은 반드시 동성애를 뜻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비혼주의, 비연애주의 등을 주장하기도 한다. 쉴라 제프리스의 "적을 사랑하는가? 헤태로 성애적 여성주의와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에서, "당신의 침대에서 당신의 머릿속까지 남성들을 모두 몰아내도록 여성들을 격려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페미니스트 티그레이스 앳킨슨은 "여성주의는 이론이며, 레즈비어니즘은 그 실천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탈코르셋은 정확히 이런 사상의 연장선이다. 이 전체 내용을 모른 채, 머리 대충 자르고 화장 안 해서 편하다고 그게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한 게 아니다. 탈코르셋 했다고 SNS에 숏컷 하고 인증하고 이런 거야말로 완벽한 모순이다.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에게 남성에 대한 욕망을 완전히 버리라는 운동이며, 여성들 사이의 연대감을 강화하고 투쟁 전선에 동참시켜 남성과의 대치를 만드려는 게 탈코르셋 운동의 본질이다. 애초에 시작부터, 화장을 하는 여성들에게 그걸 포기하라는 식의 강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운동이었다.



by uuu | 2018/11/13 10:40 | 트랙백 | 덧글(5)

욕구


by uuu | 2018/09/30 18:00 | 트랙백 | 덧글(2)

글쎄


가해자는 잡히기만 했을 뿐 아무 처벌도 내려진 게 없다. 포토라인은 수사당국에서 세우는 것도 아니고, 처벌과는 연관이 없다. 구속수사도 수사편의를 위한 절차일 뿐 처벌이나 이후 사건처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피해증거가 확실하고 통제된 환경에서 용의자가 특정되는 케이스인데도 불구하고 10일이나 걸린, 여타 다른 성범죄 사건들에 비해 오히려 처리가 늦은 사건인데, 다른 사건 같으면 늑장수사를 외칠 사람들이, 이번엔 도리어 처리가 빨랐다고 외친다.


범인이 한강에 던져버린 폰은 이제 찾을 수가 없다. 재판과 처벌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다.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나올지도 모른다. 법정에 간다면 피해자도 당연히 출석하여 입장을 대변해야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고, 상대측 변호인들로부터 가해자를 선처해달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들은 물론 정당한 절차들이다. 법은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진은 아직도 인터넷상에 계속 합성되며 떠돌고있다. 이런거 막을 방법은 물론 없다.


다툼이 있어서 홧김에 그랬다. 죄송하다. 라는 가해자의 변명이 언론사에 깔렸고,
자리를 차지하며 성기를 스스로 노출하고 과시했다는 둥의 유언비어가 퍼지고
이런 유언비어로 인해, 피해자를 되려 공연음란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있다.


남모델을_공연음란죄로_처벌하라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며
공연음란죄 처벌 청원도 수만명이 동참했다


워마드 수사는 서버가 미국에 있어 난항을 겪고있는 와중에
워마드 회원들은 편파수사 반대시위를 벌임과 동시에
범인을 추켜세우면서, 선처해달라는 탄원서를 작성하고 구명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홍대에선 모델들 문제니까 홍대 학생들에게 사과하라고 하고
(일부)국민들은 피해자엔 안중도 없이 뜬금없이 몰카대상 여성비율 자료 같은거 가져오면서 여성몰카사건에만 열올리고
이 사건은 어느덧 "홍대 몰카남"사건이 되어버렸다.


뭐 다 그렇다 치는데.


이게 당신들이 그토록 외치던 "편파적으로 모범적인" 사례인가? 여태껏 이럴 수 있었는데 안 이래서 놀라운가?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벌일 정도로 유례없이 피해자가 보호받은 케이스인가?


글쎄.


by uuu | 2018/05/17 13:04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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